단일신론

창세로부터 죽임당한 어린양

Oneness & Conditionalism 2025. 5. 3. 21:52

 

요한계시록 13:8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창세로부터 죽임을 당한 어린양”이라 선언한다. 이는 역사적 사건으로서의 십자가 이전에, 이미 하나님의 존재 안에 그 구속 계획이 내재되어 있었음을 나타낸다. 그분은 단지 나사렛에서 태어난 인간 예수 이전에 존재한 분이 아니라, 하나님의 본질과 사역 안에 내포되어 있던 자기 계시의 예정된 방식이었다. 이 말은 단순히 미래에 있을 구속의 예지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본체 안에 이미 존재했던 ‘죽임’의 실체, 곧 자기 희생적 사랑의 정체성이다.

이와 같은 이해는 로마서 4:17의 선언과 일치한다. “그는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하나님이시니라.” 하나님은 그분의 뜻과 말씀 안에 있는 것을 시간 속에 실현시키시는 분이며, 그분의 말씀이 선포되는 순간 그것은 존재론적으로 실체를 갖는다. 따라서 ‘창세로부터 죽임당한 어린양’은 단지 예지된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존재와 일체인 계시적 방식으로 내재되어 있었다.

골로새서 1:16은 이 구속적 자기 계시가 창조와도 깊이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그분으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느니라.” 여기서 삼위일체론은 '아들'을 영원히 구별된 두 번째 인격으로 해석하지만, 양태론적 단일신론은 ‘아들’이라는 명칭 자체가 시간 안에서 육신을 입고 나타나신 계시적 이름임을 전제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아들 안에서’ 창조하셨다는 말은 구속자 예수 그리스도를 창조의 중심과 목적으로 삼으셨다는 뜻이며, 이는 단지 기능적 역할 분담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기 내적 의지, 곧 자신 안에서의 구속적 계시 계획이었다.

이는 요한복음 1:1-3과도 일관된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고… 그 말씀은 하나님이시니라…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여기서 ‘말씀’은 구별된 인격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계시적 표현이며, 아들이란 이름으로 시간 속에 육화된 동일한 존재다. 즉, 아들은 하나님께서 구속을 위해 마련하신 자기 계시의 중심이었고, 그 구속은 창조 자체의 목적이었다.

이처럼 창세로부터 죽임당한 어린양,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부르시는 하나님의 언어, 그리고 아들 안에서의 창조는 모두 “한 분 하나님”의 자기 계시적 일관성 안에 있는 진술들이다. 삼위의 인격적 분리 없이, 오직 한 분 하나님이 다양한 시점과 사역 안에서 스스로를 계시하신 것이다. 이것이 양태론적 단일신론의 중심 주장이며, 성경은 이 일관된 단일성(monarchia)을 흐트러뜨리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구속의 실체가 하나님의 존재 안에서 이미 예정되어 있었고, 창조 자체가 그 구속을 염두에 두고 이루어진 것이며, 시간 속에서 그것이 ‘아들’이라는 방식으로 나타났다는 점에서 우리는 ‘아들’의 영원한 독립된 위격을 주장할 필요 없이, 오히려 하나님의 자기 계시의 양태로서의 일관성을 강조할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성경적이고 통일성 있는 신론이며, 양태론적 단일신론의 신학적 우위가 드러나는 지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