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의 진상 (영원한 형벌인가? 영원한 소멸인가?)
영어킹제임스 성경에서 같은 Hell로 번역된 원어는 스올(Sheol: 31회), 하데스(Hades: 10회), 게헨나(Gehenna: 12회), 타르타루스(Tartaroo: 1회)로 나뉘며, 각각의 의미는 다르다. 스올은 히브리어 성경에서 죽은 자들이 가는 곳을 가리키는 일반적인 개념이다. 킹제임스 성경에서 "Sheol"(스올)은 주로 세 가지 방식으로 번역되었다.
- "hell"(지옥) – 31회
- "grave"(무덤) – 31회
- "pit"(구덩이) – 3회
뉴킹제임스는(NKJV) Sheol"(스올)은 다음과 같이 번역했다.
- "Sheol" (그대로 음역) – 32회
- "Hell" (지옥) – 19회
- "Grave" (무덤) – 16회
- "Pit" (구덩이) – 3회
NIV는 대부분 "Sheol"을 그대로 음역 하여 사용하며, 문맥에 따라 "grave"(무덤) 또는 "depths"(깊은 곳)으로 번역했다.
스올은 구약 시대에 죽은 자들이 가는 곳으로 이해되었으며, 번역본에 따라 '음부', '무덤', '죽음의 세계', 때로는 '지옥' 등으로 다양하게 번역되었다. 이 개념은 당시 고대 근동 문화권의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이해와 연관되어 있는데, 스올에는 영원한 고통의 장소로서의 지옥 개념이 없다. 의인이나 악인이나 할 것 없이 가는 곳이 무덤 혹은 음부이다.
"주여, 만일 내가 스올에 들어가면, 내가 숨을 곳이 되어 숨을 곳을 주시고, 내가 그곳에서 잠들게 하시며, 주의 진노를 지나가게 하시고, 내게 정한 날이 끝날 때까지 나를 기억하시기를 원하나이다"(욥 14:13). 이것은 의인 욥의 고백이다.
"내가 말하기를, '내가 중년의 날에 문을 닫고, 생명의 남은 길을 끊으리라.' 하였으니, 나는 죽음의 나라로 가는 길에 있나이다. 나는 더 이상 살지 못하리라"(사 38:10). 히스기야 왕도 그리로 갈 것을 믿었고, 예님이 잠시 머무실 곳도 이곳이라고 예언하였다. "이는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보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다"(시 16:10).
스올은 죽음 후 영혼이 가는 곳으로, 부정적인 장소이긴 하지만 지옥처럼 영원한 형벌의 장소로 해석되지 않는다. 후에 지옥의 개념이 발전하고 성경의 다른 부분에서 지옥을 언급하게 되면서, 스올을 지옥으로 번역하는 것은 후견지명 오류 (Hindsight bias: 나중에 내린 결론을 가지고 역으로 추정하는 오류)가 될 수 있다. 이는 원래의 구약적 문맥을 고려하지 않고, 후에 발전한 교리적 개념을 역으로 적용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신약성경에서 지옥으로 번역된 단어는 23회 등장한다. 12번은 "게헨나"의 번역이며, 10번은 "하데스", 한 번은 "타르타루스"이다. 구약의 스올에 상응하는 단어는 신약의 하데스이다. 그러므로 하데스는 죽은 악인들이 영원히 고통당하는 형벌이 장소가 아님에도 킹제임스 번역자들은 하데스를 지옥으로 번역한 경우가 많았다. 그러한 신학적 혼돈을 피하기라도 한 듯 20세기 주요한 영역본들은 신약의 하데스를 "무덤" 혹은 "하데스"로 음역을 했다. 예수님께서 죽음 이후에 지옥으로 가셨다는 믿음도 하데스에 대한 용어적 혼란을 반영한다.
지옥으로 번역된 다른 하나는 "타르타루스"이다. 이 단어는 베드로 후서 2:4에 등장한다. "하나님이 죄를 지은 천사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가두어 심판의 날까지 지키게 하셨으며" 타르타루스는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지하 세계의 깊고 어두운 장소로, 신들조차 두려워하는 곳으로 묘사된다. 신약 성경에서 이 단어는 심판을 기다리고 있는 천사들이 갇힌 장소를 지칭하는데 사용됩니다. 즉, 타르타루스는 단순히 죽은 자들이 가는 무덤이나 음부가 아니라, 죄에 대한 특별한 처벌을 받는 장소로 이해된다.
신약에서 지옥으로 가장 많이 번역된 단어는 "게헨나"이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또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 (γεέννη" :게헨나)에 들어가게 되리라"(마 5:22).
"몸은 죽여도 영혼은 죽일 수 없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영혼과 몸을 지옥에 멸할 수 있는 자를 두려워하라"(마 10:28). 그렇다면 게헨나의 진정한 의미를 알아보자.
"게헨나"는 히브리어 게헨놈" (גֵּיהִנּוֹם, Gehinom)에서 유래한 그리스어 단어이다. "게헨놈"은 원래 히브리어에서 "힌놈의 골짜기"를 의미한다. 골짜기를 의미하는 "게"와 인명인 "힌놈(Hinnom)"이 합해진 단어이다. 이곳은 예루살렘 남쪽에 위치한 실제 지리적인 장소로, 예루살렘 사람들에게는 불태우는 곳 또는 불타는 골짜기라는 이미지로 잘 알려져 있었다. 고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배도와 패역이 시기에 이곳에서 자식들을 불살라 몰렉신에게 드렸다(대하 28:1-3, 왕하 23:10).
<예레미야 7:31-34>
31. "그들이 그들의 자녀를 불로 태워 발 미롯에게 바친 곳이라. 내가 명령하지 아니하고, 마음에도 두지 아니한 일을 그들이 행하였느니라.
32. 그러므로 보라, 날이 이를지라, 이곳은 다시 '도벧'(불태우는 장소)이라 불리지 아니하고, '살인자의 골짜기'(하나님의 심판 장소)라 불리리니, 그들이 거기서 죽은 자들의 시체를 장사할 것이며, 이곳은 다시 '도벧'이라 불리지 아니하고, '살인자의 골짜기'라 불리리라.
33. 이 백성의 시체가 하늘의 새와 땅의 짐승의 밥이 되어, 먹을 자가 없을 것이라.
34. 그때에 내가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에서 기쁨과 즐거움과 혼인소리를 끊어 버릴 것이라. 이 땅이 황폐하여 사람의 거주할 곳이 없게 될 것이라."
게헨나는 예수님 당시, 불태워지는 쓰레기와 시체들이 버려지는 불태우는 장소로 사용되었으며, 이곳은 더럽고 부패한 장소로 인식되었다. 이곳은 불이 계속 타오르는 장소였고, 그곳에서 불태워지는 쓰레기, 시체, 오물은 불타는 고통과 더러움의 상징이었다. 이러한 배경하에서 "힌놈의 골짜기(게헨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한 악인들의 최후의 심판장소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이 묘사한 "지옥의 꺼지지 않는 불"은 죽은 악인들의 영혼이 불타는 영원한 불이 아니라 "힌놈의 골짜기(게헨나)"에서 쓰레기와 시체를 태우는 불이다. 죄인들을 향한 불심판은 예수님의 재림 때에 이루어질 것이다. 사도 바울도 그러한 지옥관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불꽃으로 심판을 내리실 것입니다. 그들은 주님의 얼굴 앞에서와 그분의 능력의 영광 앞에서 영원한 멸망을 받게 될 것입니다"(살후 1:8-9)
지옥은 한마디로 영원한 멸망의 장소이다. 스위스 베른 대학교의 신약학 교수 울리히 루츠(Ulrich Luz)는 이렇게 쓴다: "악인에 대한 형벌은 그들의 몸과 영혼이 완전히 멸망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옥스퍼드 위클리프 홀의 전 학장이었던 프란스(R. T. France)도 이에 동의한다. 프란스는 "지옥은 지속적인 형벌의 장소가 아니라 멸망의 장소"라고 말하며, "이는 예루살렘의 쓰레기가 소각으로 파괴되던 힌놈 골짜기의 쓰레기 더미에서 용어가 유래한 의미와 맞아떨어진다."
끊임없이 회개하지 않는 자들은 결국 하나님의 면전에서 추방되고,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금지되며, 위대한 메시아의 잔치에 참여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축제와 밝은 빛으로 가득한 연회장에 들어가는 대신, 그들은 어둠 속으로 내던져질 것이다. 악인들은 결국 영원한 불로 타오르는 불호수에 던져질 것이다(둘째 사망). 그들은 예루살렘의 쓰레기 더미에 해당하는 영원한 장소인 게헨나에 쓰레기처럼 버려질 것이며, 그곳은 악취로 가득하고, 구더기가 파먹는 역겨운 광경과 끝없이 타오르는 듯한 불길로 가득한 혐오스러운 장소이다. 죄인들은 잡초, 짚, 열매 없는 나무처럼 되어, 하나님의 불에 모두 타버릴 것이다. 결국 악인들은 생명을 잃고, 멸망하며, 파괴된다.
이제 성경 안에서 영원함과 관련된 부정적 그리고 긍정적 언어를 살펴보자. 영원함은 시간적 의미(영구성)와 질적의미(초월성)이라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그러기에 영원함은 이 세상을 넘어서는 질적인 변화를 약속한다. 예수님은 영원한 생명을 약속했지만, 그 반대편의 영원한 형벌을 경고하시며 영원함의 가치를 새롭게 묻는다.
영원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이온"(αἰών)은 신약성경에서 약 128회 사용되었으며, '세대', '영원', '시대', '세상' 등 다양한 의미로 번역됩니다. 주요 용례를 살펴보겠다:
<세대 또는 시대의 의미>
- 마태복음 12:32 -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받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대(αἰών)에서나 오는 세대(αἰών)에서도 사하심을 받지 못하리라"
- 마태복음 13:39 -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대(αἰών)의 끝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니"
- 마태복음 24:3 - "이 일이 어느 때에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대(αἰών)의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 고린도전서 2:6 -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대(αἰών)의 지혜가 아니요"
- 갈라디아서 1:4 -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αἰών)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영원 또는 영원히>
- 마태복음 21:19 - "이 무화과나무가 영원히(εἰς τὸν αἰῶνα)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 마태복음 25:41-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 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αἰώνιον) 불에 들어가라"
- 마태복음 25:46 - "그들은 영원한(αἰώνιον) 형벌에, 의인들은 영원한(αἰώνιον) 생명에 들어가리라."
- 요한복음 3:16 -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αἰώνιον) 생명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 요한복음 6:51 -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영원히(εἰς τὸν αἰῶνα) 살리라"
- 요한복음 8:35 - "종은 영원히(τὸν αἰῶνα)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τὸν αἰῶνα) 거하나니"
- 고린도후서 9:9 - "그의 의가 영원토록(εἰς τὸν αἰῶνα) 있느니라"
- 히브리서 1:8 -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는 영원하며(εἰς τὸν αἰῶνα τοῦ αἰῶνος)"
- 유다서 7 -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그들과 같은 행동으로 음란하며 다른 육체를 따라가다가 영원한(αἰωνίου)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
- 요한 계시록 14:11 -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αἰῶνας αἰώνων) 올라가리라."
<세상 또는 세계>
- 고린도전서 1:20 -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서기관이 어디 있느냐 이 세상(αἰών)의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 고린도전서 3:18 - "아무도 자신을 속이지 말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이 세상(αἰών)에서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 에베소서 2:2 - "그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αἰών)의 풍조를 따라"
정리하자면 아이온은 문맥에 따라 일시적인 시대나 세대를 가리키기도 하고, 끝없는 시간이나 영원을 의미하기도 한다 특히 신약에서는 '이 세대'와 '오는 세대'를 구분하는 종말론적 개념으로 자주 사용되었다. 하나님의 성품과 그것에 따른 신자의 유익이 아이온과 함께 사용될 때에는 그것은 일반인이 생각하는 문자 그대로의 영원이나, 영원이란 단어가 항상 문자적인 끝없는 시간의 의미로 사용되지 않는 것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예컨대, 유다서 7에서 사용된 "영원한 불의 형벌"은 지금도 계속 타는 불을 의미하지 않는다. 소돔과 고모라의 주민들이 현재 의식적인 고통을 겪고 있다는 성경적 암시는 없다. 베드로 후서 2:6의 말씀에 따라 소돔과 고모라는 "잿더미"가 되었다. 이 재앙은 "불경건한 자들에게 일어날 후세에 본보기"로 삼으셨다. 여기서 바로 우리는 "영원한 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다. 영원한 불의 효과는 소돔과 고모라를 잿더미로 만들었고 불경건한 죄인들은 멸망(소멸) 되었다. 여기서 사용된 "영원함"은 하나님께로부터 기원한 것을 말하고, 결과(파괴당한 것)가 영원하여 회복하지 못하는 영원함이다. 신약의 "아이온"에 상응하는 히브리어 단어는 "올람"이다. "올람"은 "숨겨진 것" 또는 "먼 시간"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며, 시야나 인식의 범위를 넘어서는 시간을 암시한다. 그것의 용례를 보면 영원함의 의미를 새롭게 파악할 수 있다. 유월절에 피를 뿌리는 의식은 "영원한" 규례였다(출 12:24). 아론의 제사장 직분(출 29:9; 40:15; 레 3:17), 갈렙의 유산(수 14:9), 솔로몬의 성전(왕상 8:12–13), 종의 생애 기간(신 15:17), 게하시의 문둥병(왕하 5:27)도 마찬가지였으며, 구약 체계의 거의 모든 규례, 의식, 제도가 그러했다. 그러한 모든 것들은 영원히 지속되지 않았다. 역사적으로 구약 제사 체계가 끝난 점을 고려한다면 그것은 무한한 시간이 아닌 긴 지속성을 의미한다. 따라서 성경안의 영원함이라는 단어는 문자적으로 파악할 것이 아니라 문맥을 고려해야한다.
그렇다면 다음의 말씀은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그들은 영원한(αἰώνιον) 형벌에, 의인들은 영원한(αἰώνιον) 생명에 들어가리라"(마 25:46).
이 구절은 죄인이 당할 지옥의 영원한 형벌과 고통은 끝이 없다는 증명구절로 자주 인용되는데, 특별히 후반절의 의인들이 받는 영원한 생명에 병행되어서 영원한 형벌이 언급되기 때문에 그렇다. 어거스틴도 이 구절을 인용해 형벌과 고통의 끝이 없음을 주장했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 "영원함"과 연결된 다른 단어들을 고찰해 보자: 영원한 구원(히 5:9), 영원한 구속(히 9:12), 영원한 심판(히 6:2), 영원한 형벌(마 25:46), 그리고 영원한 멸망(살후 1:9). 우리가 먼저 신학적으로 이해해야 할 바는, "영원함"이라는 단어(특히 신약성경에서 사용되는 그리스어 "aiōnios"를 번역한 경우)가 시간적 의미와 질적 의미를 동시에 가진다는 것인데, 이 단어가 단순히 시간의 길이(즉, 끝없이 지속되는 상태)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특정한 본질이나 특성(다가올 시대나 하나님의 영역에 속한 성질)을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그것은 현세와 구별되는 바의 초월적이고 신성한 성격이 있다.
이미 살펴본 것처럼 유다서 7절의 "영원한 불" (πυρὸς αἰωνίου)은 소돔과 고모라의 파괴가 이 세상의 불과 달리 하나님의 심판에 속한 특별한 성질을 가진다고 해석될 수 있다. 마태복음 25:46에서 "영원한 생명"은 질적으로 다가올 시대의 신성한 생명을 뜻하면서, 동시에 시간적으로 끝없이 지속됨을 나타낸다. 생명과 형벌 모두 다가올 시대에 속하며, 따라서 질적인 의미에서 "영원하다."
예수님은 양과 염소의 비유를 마치며 악인들은 "영원한 형벌로 떠나가고, 의인들은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갈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영원한"이 수식하는 단어들은 모두 명사이다. 즉 동사가 아니다. 영원한 형벌행위(punishing)가 아니라 형벌(punishment)이다. 다시 말해서 영원한 형벌은 하나님께서 죄인들에게 영원히 계속적으로 고통을 가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 처벌행위의 결과가 영원하다는 것이다. 소돔 고모라가 영원한 불의 형벌의 결과 잿더미가 된 상태가 영원히 지속되는 것과 같다.
히브리서 5:9는 예수님은 "그에게 순종하는 모든 이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다." 주님은 자신의 백성을 계속적으로 영원한 구원행위를 하시는 것이 아니라, 단번에 구원을 이루고, 그 구원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주님은 자신의 피로 지성소에 단번에 들어가서 영원한 구속을 이루셨다(히 9:12). "영원한"은 명사인 구속을 수식하지 구속하는 행위를 수식하지 않는다. 구속행위는 이루어지고 나서 멈추며, 구속행위의 결과는 영원한 것이다.
죄인들의 영원한 의식적 고통을 증거구절로 제시하는 다음의 말씀에 대한 논의는 바일박사(Gregory K. Beale)의 논의를 대신하며 마친다. 요한 계시록 14:11 -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αἰῶνας αἰώνων) 올라가리라"
"그러나 최종 심판의 본질에 대한 신학적 논쟁이 존재한다. 이 묘사가 불신자들이 소멸되어 그들의 존재가 영원히 없어질 것임을 의미하는 걸까요? 아니면 이 본문이 절대적인 소멸이 아닌 불신자들의 영원한 고통을 포함하는 파괴를 가리키는 걸까요? 이사야 34장의 구약 문맥은 전자의 견해를 지지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거기서는 에돔의 역사적 소멸이 묘사되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34장에서 계속해서 올라가는 연기의 이미지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소멸적인 형벌을 기념하는 역할을 합니다.… 마찬가지로 … 유다서 7절에서 소돔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는 [다른 이들의] 예로 제시됩니다. 따라서 "밤낮으로 쉼이 없는" 모습도 이사야 34:9를 배경으로 하며, 연기처럼 이는 에돔의 소멸의 지속적인 효과를 가리킵니다. 특히 요한계시록 14:11의 "낮과 밤"은 … 시간의 지속성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 시간의 종류, 즉 끊임없는 활동의 시간을 나타내는 질적 소유격 구조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 쉼이 없는 상태는 고통의 기간이 지속되는 한 중단 없이 계속될 것이지만, 그 기간에는 끝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 14:10–11의 이미지는 영원히 기억될 큰 심판을 나타낼 수 있으며, 영원한 고통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님을 시사합니다"(Beale, The Book of Revelation, 761–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