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자아의 확장과 자기 내어줌의 사랑

Oneness & Conditionalism 2025. 5. 28. 20:38

현대 문화 속에서 사랑은 자주 감정적 만족이나 정서적 교감으로 축소된다. 사랑은 누군가를 통해 얻는 심리적 충족이나 자아의 확장으로 여겨지고, 그 감정이 사라지면 사랑도 끝났다고 여겨진다. 이러한 사랑은 결국 자기 자신을 위한 사랑이다. 또한 현대 사회에서 많은 관계는 교환성 위에 놓여 있다. 사랑조차도 일종의 상호 이익의 계약처럼 작동한다. 내가 이만큼 사랑하면, 상대도 그만큼 반응해주어야 한다는 기대가 깔려 있다. 사랑을 순간적 열정이나 로맨틱한 설렘으로만 이해하는 경향도 뚜렷하다. 연애, 우정, 심지어 가족 간의 사랑도 오래 지속되지 않는 감정적 연결로 이해되며, 고통이나 충돌이 오면 쉽게 포기된다. 현대 사회의 사랑 이해는 즉각적 만족자기 중심성에 기울어 있다. 그러나 성경은 사랑을 하나님 중심, 언약 중심, 타자 중심으로 제시한다. 이 사랑은 말이 아니라 삶으로, 감정이 아니라 헌신으로 드러나야 한다. 진정한 사랑은 자신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기꺼이 자신을 내어주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그러하셨듯이, 우리도 사랑을 다시 배우고 살아내야 한다. 그것이 곧 복음의 증거이며, 세상이 잃어버린 사랑의 회복이다.

  1. 자아의 확장((expansion of the self)란 무엇인가?

‘자아의 확장’이란, 개인이 누군가를 사랑할 때 상대방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과 감정의 영역을 확장하려는 경향을 말한다. 다시 말해, 사랑하는 상대를 나의 일부처럼 느끼고, 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더 풍부한 자아감, 삶의 만족, 존재의 의미를 얻고자 하는 것이다. 심리학자 Arthur Aron이 제안한 "자아 확장 이론"(self-expansion theory)에 따르면, 사람들은 사랑을 통해 다음과 같은 것을 기대한다고 한다:

  • 새로운 경험과 자극
  • 정서적 만족과 자기 실현
  • 내 삶의 공허함을 메워줄 무엇인가
  • 나의 ‘이상적인 자아상’을 실현시켜줄 타인

현대 문화 속에서 사랑은 흔히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이해된다.

  • “너와 함께 있으면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 같아.”
  • “그 사람을 통해 진짜 나를 찾았어요.”
  • “사랑을 하면 내가 더 빛나는 것 같아요.”

이런 표현 자체는 나쁘지 않지만, 문제는 사랑을 통해 자신을 강화하고 실현하려는 욕망이 중심이 될 때 발생한다. 이 경우, 사랑은 상대를 위한 헌신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한 수단이 된다. 즉, 상대는 나의 감정과 정체성을 확장시키는 ‘도구’가 되고, 더 이상 나를 만족시켜주지 않으면 사랑은 식거나 끝나버린다.

‘자아의 확장’이라는 말은 현대인이 사랑을 통해 자신을 더 충만하게 만들고자 하는 욕구를 반영한다. 그러나 복음은 자신을 채우는 사랑이 아니라, 자신을 비우는 사랑, 곧 ‘자기 내어줌’의 사랑을 중심에 둔다.

예수님의 사랑은 자아를 확장시키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아를 십자가에 내어놓으심으로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보여주셨다.

2. 자기 내어줌- 사랑의 절정

성경이 말하는 사랑은 감정이나 호의가 아니라, 자기를 내어주는 행위로 증명된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요 15:13). 예수의 생애는 이 사랑의 선언을 현실로 구현한 삶이었다. 예수께서는 단지 우리를 위하여 무언가를 베푸신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셨다. 그분은 하늘의 영광을 내려놓고 인간의 연약함을 입으셨다. 그리고 죄 없으신 분이 죄인을 대신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 그분의 사랑은 소유나 감정이 아니라 존재 자체를 내어주는 사랑이었다.

빌립보서 2장은 이렇게 증언한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6–8) 예수의 자기 비움은 단지 도덕적 본보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본성이 사랑임을 계시하는 사건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끊임없이 주는 사랑이며, 끝까지 내어주는 사랑이다. 그 사랑은 창조에서 시작되어, 이스라엘과의 언약 속에 흐르며, 마침내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절정을 이룬다. 사랑의 깊이는 그 사랑이 얼마나 멀리, 얼마나 철저히 자기를 내어줄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3. 헤세드와 자기 내어줌

구약의 ‘헤세드’(חֶסֶד)와 신약에서 나타나는 예수의 자기 내어줌은 서로 깊이 연결되어 있다. 이 둘은 단절된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의 한결같은 사랑의 연속성과 점진적 계시 안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헤세드란 무엇인가? 히브리어 חֶסֶד (ḥesed)는 단순히 ‘자비’, ‘은혜’로 번역되기에는 부족한 개념이다. 이 단어는 언약 관계 속에서 나타나는 신실하고 한결같은 사랑을 뜻하며, 때로는 ‘인애’, ‘언약적 충실’, ‘변함없는 자비’ 등으로 번역된다. 예를 들어, 시편 136편은 매 절마다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라고 반복(총 26회)하는데, 여기서의 인자(헤세드)는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함을 찬양하는 표현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을 끝까지 지키시는 사랑—그것이 바로 ḥesed이다.

헤세드는 단지 감정이나 호의가 아니라, 상대의 불성실함이나 반역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는 사랑이다. 이 사랑은 궁극적으로 자기 희생을 포함하며, 철저하게 상대를 위한 자기 포기로 나아간다. 이러한 맥락에서, 예수의 자기 내어줌은 헤세드의 절정이자 성취로 볼 수 있다. 예수는 "새 언약"의 중보자이시며(히 9:15), 이 새 언약은 하나님께서 오래 전부터 약속하신 그 헤세드의 성취이다.

예를 들어, 예레미야 31:31–34에서 하나님은 새 언약을 약속하시며, 그 언약의 핵심은 용서와 관계 회복, 곧 은혜로운 자기 헌신이다. 이 언약은 예수의 피로 성취되며(눅 22:20), 그 성취는 바로 자기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을 통해 이루어진다.

예수의 십자가는 단순한 이타적 죽음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언약에 따라 끝까지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의 사건이다. 그분은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을 배신당하신 분이면서도, 오히려 그 언약을 완성하시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셨다. 이처럼 신약에서의 자기 내어줌은 곧 헤세드의 구체적 구현이며,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드러내는 정점이다.

결론) 결국 사랑은 나를 확장하는 일이 아니라, 나를 내어주는 일이다. 현대가 말하는 사랑은 자아의 충족을 목표로 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사랑은 타인을 위한 자기 비움과 언약적 신실함에 뿌리를 둔다. 하나님의 헤세드는 조건 없는 지속성과 헌신의 사랑이며, 예수의 자기 내어줌은 그 절정이다. 우리는 더 이상 ‘무엇을 얻을까’ 묻기보다, ‘무엇을 줄 수 있을까’를 묻는 사랑으로 초대받았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 로마서 5장 8절 (개역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