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본질: 의존, 현존, 실존
현대 신학은 인간의 삶과 신앙을 설명하기 위한 다채로운 개념들과 접근 방식을 제시해 왔다. 그 가운데서도 ‘신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여전히 근원적이고도 본질적인 과제로 남아 있다. 특히 이 질문은 단지 교리적 정립이나 종교적 실천을 넘어, 인간이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가에 대한 실존적 탐구를 포함한다.
전통적인 신앙 이해는 주로 인지적 동의(信) 또는 실천적 순종(行)에 집중해 왔으나, 오늘날의 영적 상황은 신앙을 보다 인격적이고 존재론적인 차원에서 재해석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이에 본 글은 신앙의 본질을 세 가지 축—의존(dependence), 현존(presence), 실존(existence)—을 통해 고찰하고자 한다. 이는 신앙을 단순한 믿음의 선언이 아닌,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존재 전체로 응답하는 삶의 자세로 이해하려는 시도다.
1. 의존: 신앙은 하나님께 자신을 맡기는 존재론적 고백이다
‘의존’은 신앙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탁하는 태도로 보는 관점이다.
- 신앙은 단순한 신념이나 사상의 수용이 아니라, 존재 전체를 하나님께 맡기는 관계적 행위이다.
- 인간은 스스로 존재 근거를 갖지 않으며, 하나님 안에서만 존재의 이유와 생명을 유지한다.
- 이것은 사르트르나 하이데거의 “불안한 실존”에 대한 해법으로서, “나는 내 힘으로 살지 않는다”는 겸허한 신적 의존의 고백이다.
성경적 근거: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 15:5)
▶ 모세는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에 의지하여 민족적 구원의 통로가 되었다. 다윗은 권력이나 인간적 계산보다 하나님의 뜻과 때를 기다리며 의지한 삶을 살며 “주는 나의 반석이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시 18:2)라고 고백했다. 바울은 다마섹 도상에서 주님의 음성을 듣고 철저히 굴복, 이후 모든 사역과 고난을 ‘하나님의 은혜로’ 해석한 인물이다.
2. 현존: 신앙은 지금 여기서 하나님과 함께하는 인격적 만남이다
신앙은 단순한 사후의 보장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금 여기서 나와 함께하신다는 확신에서 시작된다.
- 현존(presence)은 성경 전반에 흐르는 하나님 이해의 핵심이다.
- 하나님은 멀리 계신 존재가 아니라, 임마누엘(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하시는 주님이시다.
- 신앙은 그 현존을 인식하고 응답하는 만남의 행위이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시 23:4)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마 18:20)
실천적 적용:
기도, 말씀 묵상, 예배는 하나님의 현존에 자신을 노출하는 영적 습관이다.
신앙은 추상적 이론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현존적 교제로 드러난다.
▶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나님께로 옮겨진 인물로, 성경은 그 이유를 단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이는 에녹이 단지 종교적 삶을 산 것이 아니라, 일상 전체 속에서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유지했다는 것을 뜻한다. ‘동행’(히브리어 halak)은 지속적 관계와 방향성을 나타내는 동사로, 에녹은 자신의 삶 전체가 하나님의 임재 안에 거하는 존재였음을 보여준다. 요셉은 억울한 노예 신분과 감옥의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함께 하셨다’ 는 반복적인 진술이 등장한다. 그 현존은 감정적 위안이나 신비한 체험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삶의 모든 상황 속에서 요셉을 인도하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적 손길로 나타난다.
3. 실존적 의미: 신앙은 나 자신의 존재 전체로 응답하는 결단이다
신앙은 정보의 수용이 아니라, 삶 전체로 응답하는 실존적 결단이다.
- 이는 신앙이 단지 객관적 사실을 믿는 것이 아니라, 그 사실에 나 자신의 실존을 걸고 응답하는 것임을 의미한다.
- 바울이 부활하신 예수를 만났을 때처럼, 신앙은 삶 전체의 방향과 본질이 뒤바뀌는 실존적 사건이었다.
키에르케고르, 불트만 등의 실존신학 영향:
이들은 신앙을 “참된 자아의 발견”이자 “하나님 앞에 홀로 선 인간의 응답”으로 보았다.
예수 안에 나타나신 하나님 앞에서, 나의 실존은 중립일 수 없다.
- 실존은 단순히 살아 있는 상태가 아니라,
- 내가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자기 물음과 응답의 영역이다.
- 예수 앞에 섰을 때, 나의 실존은 관찰자나 중립자의 자리에 머물 수 없다. 예수 앞에 선다는 것은 하나님의 본체 앞에 서는 것이며, 이 만남은 존재 전체의 응답을 요구한다.
▶ 베드로는 예수를 세 번 부인했던 과거가 있었다 (눅 22장).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를 만난 이후 그는 실존의 방향을 전환하고, 이전의 두려움에서 해방된 자로서 하나님 앞에 선 존재가 된다.예수님이 누구신지를 고백함으로써 나의 존재 전체가 그분께 속하게 되는 실존적 변화가 신앙이다.
베드로는 사도행전 4장에서 산헤드린(유대 최고 종교 공의회) 앞에 서서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행 5:29)
🧩 종합: 신앙은 “의존 속에서의 실존적 응답”이며, “하나님의 현존을 살아내는 삶”이다
구성 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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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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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에 대한 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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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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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삶의 근거를 두는 존재론적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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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 신뢰, 항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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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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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지금 여기 계시다는 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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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 기도,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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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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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전체로 응답하는 결단과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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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 소명,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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